이달의 책
2016.10.13 11:37

[2016.10]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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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0월 주제는 ‘결실’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합니다. 과학과 인문, 문학에서 세 권의 열매를 골랐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마음도 가을처럼 영글기를 바랍니다.
비행기 착륙 10분 전 객실등 왜 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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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유쾌한 과학 이야기
브뤼스 베나므랑 지음
김성희 옮김, 까치
429면, 2만원

우리는 온통 과학 업적으로 도배된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이라고 하면 여전히 난해한 방정식이나 복잡한 실험실, 외계어 같은 전문용어만 떠오른다. 하지만 프랑스의 과학 대중화를 위한 유튜브 채널 ‘생각 좀 해봅시다(e-penser)’의 운영자인 지은이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개성과 사람 사는 세상의 생생한 사연이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이야기 동산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해적 소재 영화에선 애꾸눈 선장이나 선원이 반드시 등장한다. 거친 세상에서 험한 삶을 살다 보니 눈알을 잃을 일이 잦아서일까? 상대에게 더 험악하고 우락부락하게 보여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일까? 지은이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 해적이 들끓던 시대에는 전등이 없었다. 고래기름 등불을 켜도 실내는 어둑어둑했다. 이 때문에 선박을 습격한 해적들이 갑판에서 선실로 들어서면 어둠이 적응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안구 속의 망막은 밝을 때 작동하는 원추세포와 어두울 때 작동하는 간상세포로 이뤄졌는데 간상세포가 활발해지려면 10~15분의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역습당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해적들은 눈에 이상이 없어도 한쪽에 안대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한눈이라도 어둠 속에 계속 적응시켜두면 긴급 상황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htm_201610010243684994_99_201610010926041905년 특허청 직원이었던 무명의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논문 네 편은 노벨상감이었다. [중앙포토]
이는 현대에서도 유용하다. 여객기를 여러 차례 타본 사람이라면 착륙 전 10~15분 동안 객실 전등을 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전기를 아끼기 위한 것일까? 설마. 지상 관제탑에서 여객기를 잘 보기 위해서일까? 그럴 리가. 관제탑에선 비행기를 레이더로 확인하지 육안으로 찾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답은 승객들을 어둠에 적응시키기 위해서다. 만일 착륙 도중 사고가 발생해 전기가 나가도 이런 식으로 이미 어둠에 적응한 승객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두워져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면 우선 겁부터 먹게 마련이니까.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빛·물질·전자기학·우주·역학·상대성이론 등 과학 분야의 다양한 소재를 친근하게 다룬다. 아이작 뉴턴이나 앨버트 아인슈타인 같이 잘 알려진 과학자들의 비교적 덜 알려진 삶에 대한 소개는 덤이다. 눈길을 끄는 인물이 ‘경험론’과 ‘귀납법’으로 유명한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근대과학의 아버지’ 자리를 놓고 갈릴레이와 경쟁했을 정도로 과학사에서도 비중이 크다. 우상을 배격하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맞는 새로운 인식론을 제창했기 때문이다. 과학을 하려면 인문학이 바탕이 돼야 하고, 인문학을 하려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지동설 안 굽힌 브루노, 갈릴레이와 상반된 운명
지은이가 소개하는 과학자들의 삶은 과학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철학자·사상가인 조르다노 브루노를 보자. 그는 동시대 인물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대조적이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로마 교황청의 심문을 받자 이를 철회해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브루노는 “지구상의 모든 것은 지구와 함께 움직인다”“우주에는 한없이 많은 지구, 끝없이 많은 태양, 무한히 넓은 하늘이 존재한다”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그는 이 때문에 로마 교황청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선고받았다. 주장을 철회하면 살려주겠다는 교황 클레멘스 8세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다. “나는 죽음 때문에 뒤로 물러설 생각은 없다”라고 과학자·지식인으로서 기개를 보였다. 결국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혀가 코챙이로 뚫린 뒤 산채로 불태워졌다.

브루노와 갈릴레오의 재판을 맡아 지동설 반박에 앞장섰던 예수회의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1930년 6월29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됐다. 교황청은 갈릴레이 재판은 재검토했지만 브로노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우주에 대한 그의 주장은 틀린 게 없음을 오늘날 누구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3년간 배웠다, 말싸움 절대 안 지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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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메멘토
308쪽, 1만4000원

우리 식으로 치면 방송인 김미화씨가 서울대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셈이랄까. 일본 텔레비전에서 사회자로 활동하는 하루카 요코(遙洋子)는 연예계 생활 10여 년 만에 ‘여자로서 언어 격투기장에서 살아남기’에 회의를 느끼고 1997년 이 분야의 고수를 찾아 도쿄대학에 진학한다. 말싸움의 대가로 알려진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사회학과 교수는 그에게 “강해진다는 것은 말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 가르침을 준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나’의 메타사회학』의 저자인 우에노 교수는 연예인으로서 논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하루카에게 조언한다. “때려눕히는 방법이 아니라 상대방을 갖고 노는 방법을 배워서 돌아가세요.”

하루카는 3년에 걸친 우에노 교수 ‘따라잡기’의 과정을 통과하며 나름 ‘싸움을 하는 열 가지 방법’을 터득했다. 일명 ‘억울하고 분한 말을 들어 본 사람들을 위한 열 가지 방법’이다. 하나, ‘그게 왜 나쁘냐’는 식으로 되받아치기. 둘, 반론하거나 변명하기보다 ‘모르겠다’면서 질문하기. 셋, 상대의 무지를 드러내려면 ‘ㅇㅇ란 무엇인가’ 묻기. 넷, 질문을 다시 질문하기. 다섯, 전문 분야만 아는 바보 말고 폭넓은 지식인 되기. 여섯, 눈앞의 틀을 의심하고 깨는 발상하기. 일곱, 말에 민감해지기. 여덟,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기. 아홉, 흥분하지 말고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 유지하기. 열, 싸워서 이기고 설득력 갖추도록 공부하기.(256~271쪽)

하루카는 여성이 처한 현실이 권력 때문이라는 걸 페미니즘이 밝혀냈다는 점을 깨닫고는 그에 대해 이렇게 쓴다.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숱한 말을 탄생시켰다. 그 말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 문제이며 각자의 과제다.” 이 책의 탄생에 산파 구실을 한 우에노 교수는 “이 책은 내가 모르는 내 이야기입니다”라며 짐짓 시치미를 뗐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일에 밥에 붙들린 삶, 출구 되어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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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김기택 지음, 다산책방
316쪽, 1만3000원

영상 시대에 시(詩)는 초라하다.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쓸모가 없다는 점, 그리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밥 벌어먹는데 소설은 언제 도움됐던가. 문학의 본질이 실용성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전자는 우선 넘어가자. 하지만 ‘시의 난해성’은 조금 억울하다. 약간의 실마리만 제공하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쓰인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잖아’라고 할지 모르나 절제된 글을 읽는다는 건 만만한 게 아니다. 미술 감상에도 해설자가 있는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다음 시를 보자.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문정희, ‘흙’ 부분) 땅에 깔린 흙을 울음과 연결시킨 듯 싶지만 알 듯 모를 듯하다. 근데 이 설명을 읽곤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에는 즐거움도 있다. 실컷 수다 떨고 나서 후련해졌다면 그건 떠드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울었다는 증거다.” 한발 더 나아가 다음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내주기만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흙은 어머니를 닮았다.” 어쩜, 시가 이토록 재미있다니.

김기택 시인이 6년간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인 산문을 모은 책이다. 모두 51편이 수록돼 있다. 시 감상과 함께 자전적 이야기나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김기택 시인은 직장에 다니다 서른 살이 넘어 등단했고, 시 쓰기와 직장 생활을 20여 년간 병행해왔다. 저자는 말한다. “시는 일과 밥에 붙들려 꽃지는 줄 모르는 나에게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시 쓰기를 통해 삶과 현실을 견디어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여태 시와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될 듯싶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http://news.joins.com/article/20662055


이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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