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2016.06.08 10:17

[2016.06] 삶과 죽음

http://hrz6.cafe24.com/344185 조회 수 17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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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 하는 ‘이달의 책’ 6월의 키워드는 ‘삶과 죽음’입니다. 지혜로운 삶과 지혜로운 죽음은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소설가 권여선은 삶의 불가해한 장면을 포착하고, 하루키는 어떻게 살지를 말합니다.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는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합니다.
늦은 밤에 소주 한병, 그게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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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창비
276쪽, 1만2000원

제목과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스치는 소설집이다.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밝혀 놓았듯 저자 권여선(51)씨는 술자리라면 마다할 생각이 없는 소문난 애주가여서다. 가장 잘 아는 그래서 익숙한 얘기를 하겠다는 것일까.

기대 대로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에는 하나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나 술자리 풍경이 나온다. 맨 앞에 실린 단편 ‘봄밤’은 최소한으로 요약하면 알콜의존증이 지나쳐 요양원에 강제 구금되는 여자의 얘기다. 그 다음에 실린 ‘삼인행’은 이별 직전의 부부와 남자 동창, 세 친구가 1박 2일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 술 마시고 싸우다 다시 술 마시는 이야기. ‘카메라’의 관희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필름 끊기는 현상이 거의 일상화된 듯한 인물이다.

소설집의 전체적인 색깔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건 ‘이모’를 읽으면서다. 갓 결혼한 ‘나’는 쿨한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보다 더 쿨한 시이모(시어머니의 언니) 병문안을 간다. 시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 역할을 떠맡은 시이모는 평생 시할머니를 모셨고, 나의 시어머니를 포함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그러느라 결혼도 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데도 신세 한탄을 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데 덜컥 췌장암 진단을 받고 결국 세 달만에 세상을 뜬다.

물론 이 작품에도 술 마시는 장면은 나온다. 마지막에 시할머니를 뿌리치고 독립해 혼자 살게 된 시이모는 규칙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일요일 밤이면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소주를 한 병씩 마신다. 어쩌면 생애 최초, 최소한의 사치인 셈이다. 소설은 죽기 전 시이모가 내게 털어 놓은 얘기를 통해 그의 삶을 한 조각씩 복원한다.

그 조각들의 조합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깔끔하고 합리적으로만 보였던 시이모가 실은 타인에게 끔찍한 해코지를 한 적이 있다는 것. 늘 빼았겼을 뿐 자기 걸 챙기는 데는 서툴렀던 시이모가 내면에 차곡차곡 분노를 쌓아 올리고 있었던 거다.
htm_201605280151588053_99_20160529072710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1881~82년작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여급의 뒷배경은 거울에 비친 술집 풍경이다. 당시 사교장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런던 코톨드 미술관 소장. [중앙포토]

의식을 잃기 직전 시이모는 말한다. 그 고약한 행동 덕분에 자신이 살았다고. 그런데 그 고약함이 뭔지 모르겠다고. 인간은 결국 내가 고통받는 만큼 남에게 앙갚음해야 살 수 있는 존재일까. 아무런 잘못이 없는 타인에게 모진 짓을 한 더러운 존재라는 자의식, 그 자포자기식 독한 감정 같은 게 있어야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

이런 묵직한 질문에 주목할 때 소설집 제목은 달리 보인다. 주정뱅이는 핑계일 뿐, 정작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의 민낯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들, 그 곤혹스러운 시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견뎌내 왔느냐는 질문일 거다. 안녕 주정뱅이가 아니라 잘들 살고 있느냐는 문안인 셈이다.

‘카메라’는 감당하기 벅찬 인생의 진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쏘아 보는 강렬한 눈빛만으로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광’과 맨 마지막에 실린 ‘층’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작품 전체가 살아나는 환상적 색채의 작품들. ‘실내화 한켤레’는 제목 대로, 읽고 나면 실내화의 이미지가 오롯이 남는다.

삶이 건조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집이다.
[S BOX] ‘주정뱅이’ 소설가 주량은 소주 2병에 맥주 2000㏄

‘작가의 말’에서 권씨는 자신이 애주가임을 다음과 같이 문장을 통해 밝힌다.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한데 여기서 ‘이 판’이 반드시 술자리 만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다. 권씨는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며 술을 한 잔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젊음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척 연기를 하다가 결국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 ‘小(소)설가’가 되었다고 밝힌다. 결국 이 판은 술판이자 소설판, 술 마시고 소설을 쓰며 세월을 보내는 인생판이라는 얘기다. 권씨는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점점 초조해진다”고도 했다. 술 얘기로만 돌아가, 대체 주량은 얼마나 되는 걸까. 문자로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소주 2병에 맥주 2000cc’. 주정뱅이 소설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신주쿠 아르바이트생 하루키, 어떻게 소설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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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336쪽, 1만4000원

1978년 4월, 무라카미 하루키는 도쿄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1회 말 타자가 2루타를 날리고, 공이 방망이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순간 하루키는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시합이 끝난 뒤 하루키는 문구점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고, 반년 만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완성했다.

세계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쓰기로 결정하고, 또 소설가로 살아온 것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다. 먼저 하루키는 소설가에 대해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에 구태여 저속 기어를 걸어 한없이 병렬하는 일의 연속이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머리 회전이 빠르고 총명한 사람들은 오히려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의 삶도 복기한다. 20살에 회사에 취직하기 싫어 가게를 차린 일, 신주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 등이 펼쳐진다.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도 건낸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질기게 해보라”면서도 “소설을 한두 편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가로서 먹고 사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현실적인 충고도 잊지 않는다. 이밖에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갖는 법, 소설의 등장인물을 구성하는 법,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러한 방법론을 차치하고라도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동맥류 수술은 폭탄 처리” 외과 명의의 의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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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376쪽, 1만6000원

‘인간의 의식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이 모여 있는 은밀하고 신비한 곳.’ ‘삶에서 중요한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수수께끼 같은 곳.’ 뇌(腦)다. 헨리 마시(66)는 사람의 뇌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로 30년을 살아왔다. 영국 런던의 앳킷슨 몰리 병원에서 뇌수술 수백 건을 거치며 은퇴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그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출퇴근한다. 실패를 덜 두려워하며, 환자들에게 더 깊은 연민을 느끼면서.

마시가 2014년 펴낸 『참 괜찮은 죽음(원제 Do No Harm)』은 명의(名醫) 반열에 오른 그가 평생 만났던 환자와 병에 얽힌 이야기를 25가지 주제로 나눠 정리한 의학 에세이다. 스스로는 “초연함과 연민 사이에서 그리고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실패에 더 마음이 기운 것은 “경험이 늘어날수록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크게 느끼게” 돼서다. 동맥류 수술을 폭탄 처리 작업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환자 가족들에게 말한다. “보시다시피 여긴 좀 전쟁터 같아서.” 수술이 성공하면 영웅이 되지만 실패하면 악당이 될 뿐인 운명이기에.

‘모든 외과 의사는 자기 안에 작은 공동묘지를 지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마시도 온갖 방식으로 죽는 수많은 환자 앞에서 쓰라린 회한에 잠겼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환자를 대하며 자문한다.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텐데.”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희망을 빼앗으려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내몰린 공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진실만을 말하려 노력했다. 그가 영국에서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가 된 까닭이다. 죽음에 직면한 만인(萬人)의 얼굴을 그는 끈기있게 그렸다.


http://news.joins.com/article/2009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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