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2015.10.09 10:51

[10월 이달의 책] 인생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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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0월 주제는 ‘인생풍경’입니다. 40년 가까이 시를 써온 이성복 시인의 시론(詩論)집, 전후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의 자서전, 그리고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작가인 이석원씨의 수필집을 골랐습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저자들이 길어 올린 삶의 향기가 진득하게 퍼집니다. 또 한 해의 결실을 준비하는 가을철에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시는 노래방, 헛소리가 참말 되도록 연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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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의 시 , 불화하는 말들 , 무한화서
이성복 지음, 문학과지성사
각 권 141~183쪽, 각 권 1만1000~1만2000원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의 주인공은 늘그막에 시를 써보려는 할머니(윤정희)다. 진지하고 끈질기게 창작에 매진한 그는 끝내 시 한 편을 써낸다. 이성복(63) 시인이 펴낸 세 권의 시론(詩論)은 이런 본능적 시인 지망생에게 희망을 주는 길잡이다. “시는…”으로 시작하는 짧고 긴 경구와 시 수백 편이 읽으며 배우는 재미를 던져준다.

 “시는 도서관이 아니고 노래방이에요.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세요.” 언어는 현실의 온갖 오물들이 다 묻어 있는 상스러운 것이지만 그 때문에 축복받았다. 비어·속어·은어는 시의 보고다. 가볍고 쉽게 사라지는 입말, 리얼리티가 있고 리듬이 살아있는 구어(口語)에 의지해 머리로 쓰지 말고 입으로 써라. 권투의 잽 날리듯이 말을 툭툭 던져라.

 “시는 독자를 소스라치게 만드는 귓속말이에요. 시는 우리 심장에 정확히 꽂혀, 다시는 안 빠지는 화살이에요.” 글이 착하면 재미가 없다. 약간 싸가지 없고 톡톡 튀며 무엇보다 살기가 서려 있어야 한다. 진실을 밝힘으로써 자기와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옷깃에 스며드는 삼월 추위 같은 것, 빗나가고 거스르는 것이 시다. 일상의 닳아빠진 관절들을 갈아 끼우라.

 “시는 천둥벼락이고 집중호우예요.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써야 힘이 있어요.” 시는 몸에서 바로 꺼내야 한다. 생각에 의지하면 항상 늦는다. 머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빨리 쓰라. 시는 말의 춤이다. 말에도 ‘넣고 빼고’ 하는 관능이 있으니 손을 신뢰하면서 가급적 한달음에 써라.

 “시는 단도직입(單刀直入)이고 단도직입(短刀直入)이예요. 짧은 칼 한 자루 들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거지요. 시는 백 미터 달리기예요.” 시의 깊이는 불화에서 생기고, 시의 감동은 열정에서 나온다. 사각의 링에서 코너에 몰린 선수같이 링의 반동을 이용해 튕겨 나오는 것이 시 쓰기다. 머릿속 잡념이 지나가는 속도로, 잡생각과 헛소리에 의지하라.

 1977년 등단한 뒤 40년 가까이 시인으로 살아왔지만 “완성 같은 것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시가 닿은 지점은 ‘불가능’이고, “오직 모를 뿐”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극지(極地)가 시인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다. “얼다가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 속에서 “오직 견디는 것뿐. 위로 안 받기 위해, 좀더 강해지기 위해” 그는 시를 쓴다. “또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 문학 아니겠어요”라고 되묻는 시인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사람의 낮은 한숨 소리”처럼 읊조린다. “속절없이 바다에 내리는 눈이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S BOX] 이성복 시인의 시시콜콜

우리 시대 손꼽는 한국 시인=황지우는 재능이 특별하고, 최승자는 시에 순교했으며, 박남철은 뛰어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스승=김수영, 카프카, 벤야민.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마다 카프카를 읽는다. 카프카의 문장은 전부가 시다.

호(號)=미사(未思). 이 말은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 지금까지 제 공부의 요약이다.

인생과 글쓰기의 원칙=‘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는 카프카의 말.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 있든 자기한테 유리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가장 사랑하는 문장=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문학 지탱의 축=진지함, 측은함, 장난기. 진지함이 없다면 진실에 대한 지향이 없을 테고, 측은함이 없다면 윤리적 책임감 같은 것이 없을 테고, 장난기가 없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을 것.

러닝머신 할 때 외우는 책자=『꽃에 이르는 길』. 제게 가장 필요한 문구들을 뽑아놓았다. 글쓰기와 ‘생사 문제’ 해결에 지침이 되는 것들로 그 가르침들을 반복해 외우면서 뼛속에 새겨왔다.


한 일본 지식인의 초상, 전쟁과 국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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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글항아리
552쪽, 2만5000원


이 유려하고 섬세한 산문을 읽노라면 저자가 처음부터 문예평론가가 아니라 본래 의사였다는 데 새삼 놀란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호기심을 좇는다는 점에서 그에게 의학 연구와 문학·예술에 대한 탐닉, 나아가 사회에 대한 발언은 결코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었다.

이 자서전의 주인공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는 1919년 양의 해에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부유한 데다 서구 문물에 밝았다. 그 역시 금수저까지는 몰라도 은수저 정도는 입에 물고 나온 셈이었다. 하지만 호시절은 잠시였다. 군국주의와 태평양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의 예상대로 일본은 패전했다. 의사로서 그는 원폭피해자 조사에 참여해 히로시마의 참상을 목격했다. 한편으로 세계 지도의 변방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서구에 대한 오랜 동경을 좇아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이후 생의 상당 부분을 서구 각지에서 보냈다. 패전 이후 비로소 표현의 자유가 확보된 일본에서 그는 의사 노릇 대신 일본과 세계에 대한 시선을 담은 글을 이곳 저곳에 쓰며 먹고 살았다.

한 줄로 요약이 힘든 이 삶에서 한 가지만큼은 뚜렷이 드러난다. 무리 짓기 대신 홀로서기를 두려워 않고 20세기를 살아온 지성인의 초상이다. 필력부터 대단하다. 자신이 겪은 시대의 풍경, 당시의 자신에 대한 묘사가 놀랄 만큼 생생하고 탄탄하다. 남의 말과 생각을 제 것인 양 삼거나 지난 시절에 대한 상투적 관념에 기대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완고함과 예리함이 자서전 전체를 관통한다. 거칠게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그는 1960년 안보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특정 조직의 논리에 동화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진전을 바라는 스스로의 판단을 따른 것이다. 그가 2008년 89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일본의 평화헌법 9조 수호운동에 나선 것 역시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이 책에는 그런 21세기의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창 때였던 40대 후반에 쓰여진 이 자서전은 또 다른 격동기였던 68년 시점에서 끝난다. 저자에게 자서전은 생의 막바지에 돌아보는 아련한 추억담보다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라는 존재가 형성된 과정을 되짚는 과정이었다. 그와 동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특히 더 울림이 크겠지만, 그 시대가 낯선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픈 20세기의 기록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뭐해요? 말 한마디에 또 가슴이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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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지음
그책, 360쪽, 1만3000원


저자는 책을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소개하는데, 읽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는 소설일까, 수필일까. 그도 그럴 것이 짤막한 글을 담은 보통의 에세이와 다르게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진다. 저자의 일기 같은 단상들은 중간 중간 툭툭 나온다. 단상과 이야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보통의 에세이처럼 구절구절 골라 읽을 수 없게 하는 책이다.

이야기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이다. 남자는 여자를 만났고, 사귀는 것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관계가 계속될수록 마음은 커지는데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사이라 불만도 커진다. 남자는 관계와 사랑을 곱씹는다.

“단 한마디만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도 그 즉시 관계가 끝장나버릴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자꾸 나보고 자기랑 비슷하다는데 내 보기에 우린 조금도 비슷하지 않거든요. (중략) 하지만 간혹 얼굴 한번 보고 가끔 안부나 주고받는 사이에 굳이 정색하며 아니,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에요 당신은 나를 모릅니다, 라고 하는 것도 오버인 것 같아 나는 그냥 당신을, 이 관계를 내버려 둘 뿐이죠. (중략) 이렇듯 나의 많은 관계들이 솔직하지 않은 대가로 유지된다는 것이 슬픕니다.”(210~211쪽)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221쪽)

한 남녀의 만남을 쭉 이야기하는데 결국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사람의 일상 아니던가. 저자의 글은 솔직하다. 책 끝머리에 토해내듯 펼쳐놓은 그의 밥벌이 인생에서 그는 왜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낱낱이 털어 놓는다.

1971년 서울 출생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다. 그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녀의 연락. “뭐해요?”



http://news.joins.com/article/18784461


이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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