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2015.10.09 09:44

[9월 이달의 책] ‘대결보다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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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 하는 ‘이달의 책’에서는 공존을 주제로 한 책 세 권을 골랐습니다. 낯선 동물 참매와 소통하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한 여교수의 이야기, 12세부터 87세까지 자신의 몸과 매일 대화하며 그 변화를 기록한 소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대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람이 선선해지는 계절, 함께 하는 삶을 고민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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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488쪽, 1만7000원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변호사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버지의 짐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짐은 일기장인데 내면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일기가 아니다. 철저히 몸에 대해 쓴 것이다. 12세부터 87세까지 기록한 신체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딸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몸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어린 시절의 몸은 성장을 담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빨리 변하는 몸 구석구석을 파악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시간에 끌려다닌다. 30대 후반부터 몸에 점이 생기고 에너지가 떨어지며 곧 노안도 시작된다. 60대 이후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체는 몸이라기보다 짐에 가까워진다.

 몸에 대해 무슨 일기까지 쓸까 싶지만, 소재는 끝도 없다. 성에 대한 관심, 악몽, 건강염려증뿐 아니라 입술 물어뜯는 버릇, 치통, 코막힘, 여드름, 하품까지 기록한다. 계단에서 떨어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함께 굴렀을 때의 묘사는 부성애 같은 감정도 몸의 감각과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왜 몸인가. 일기의 화자인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의 아버지는 참전 후 산송장이 돼 돌아왔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에 겪은 공허함은 마치 자신의 몸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는 12세에 기록한다. “몸을 다시 찾기 위해 일기를 쓰겠다”고.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시하고 기록해야만 두려움을 쫓을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는 몸을 정신의 ‘동거인’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몸을 들여다보는 동안 바깥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다. 어머니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시신도 찾을 수 없이 세상을 떠난다. 우정·사랑 같은 모든 감정을 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이런 세상에서 믿을 것은 눈에 보이는 신체뿐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는 몸의 신호에 충실히 반응해 꼼꼼히 기록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렇게 쓴다. “이 일기는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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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판미동
456쪽, 1만5000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메이블(Mabel)이라고 이름 붙인 참매(hawk) 길들이기를 통해 극복해낸 과정을 회고한 논픽션이다. 저자이자 주인공인 헬렌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과 과학사를 가르치는 독신 여교수. 런던에서 사진 기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졸지에 세상을 떠나자, 상대 남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연애를 망칠 만큼 심신이 망가져 버린다. 헬렌은 덥석 어린 참매 한 마리를 사들여 조련에 나선다. 동성애자이자 사회부적응자였던 20세기 초반의 소설가 T H 화이트가 쓴 조련서 『참매』를 참고하면서다.

 사실상 독학으로 감행한 참매 길들이기가 순탄할 리 없다. 설상가상, 화이트의 『참매』는 조련의 ABC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매를 훈련시키는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서술한 목록”이라는 평가를 받은, 일종의 실패담이다.

 헬렌은 화이트의 조련서와 자신의 체험을 번갈아 오가며 참매 조련의 어려움과 기쁨, 동물의 야성을 순치시키는 일의 한계와 의미, 참매 조련의 문화사적 의미 등 이야기의 볼륨을 한껏 키운다. 지극히 어려웠지만 결국 이겨냈다, 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htm_2015082901128a010a011_99_20150829190『메이블 이야기』의 저자 맥도널드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그가 길들인 참매 메이블. [사진 판미동]

 화이트는 불행한 유년을 보낸 이였다. 그의 부모는 지독하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개들을 아껴하자 아버지가 총으로 모조리 쏴 죽였을 정도다. 상처가 깊었던 화이트는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 케임브리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끝내 ‘뒤틀린’ 성적 취향을 억누르지 못한다. 소녀는 괜찮지만 성인 여성의 몸매를 불쾌해 한다.

 그에게 참매는 본성과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참매 길들이기에 나섰지만 어느 정도 참매의 본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는 조련 과정이 결국 조련 실패를 부르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헬렌은 화이트의 실패를 따라가며 자신의 조련 속도와 방향의 옳고 그름을 가늠한다.

 참매는 몸 길이가 38∼48㎝ 정도로 비슷한 종류인 새매·송골매보다 크다. 살생을 좋아하고 길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성미가 시무룩하다고 한다. 풍부한 관련 자료, 깔끔한 문장력으로 무장한 헬렌은 참매를 ‘깃털 달린 재킷을 입은 850g짜리 죽음’으로 표현한다. 참매를 길들이는 매잡이의 운명이 결국 잔혹한 사냥 과정을 통해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구절이다. 매가 길들이는 사람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훈련시키는 과정인 ‘와칭(Watching)’, 매의 살상 욕구가 들끓는 상태를 뜻하는 ‘야락(Yarak)’ 등 전문적인 길들이기 과정에 대한 묘사도 흥미를 자아낸다.

 사실 매잡이 전통은 영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설가 이청준이 중편 ‘매잡이’에서 우리의 매잡이 풍습을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야성을 길들여 거친 자연을 제압하는 매잡이는 투박해서 매력적이다.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회고담이다보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강렬하지는 않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저자 헬렌의 단정한 문장들을 곱씹어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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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모타니 고스케·
NHK히로시마 취재팀 지음
김영주 옮김, 동아시아
328쪽, 1만5000원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일하며 보낸다. 집에 가도 겨우 잠만 자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밥도 밖에서 사먹는 경우가 많다. 제때 못한 빨래 때문에 급하게 구매한 속옷과 양말도 한가득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지만, 카드 결제일이 지나면 수중에 남아있는 돈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한다. 시간이 갈수록 월급은 쥐꼬리만큼 늘지만, 지출은 껑충 늘어난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오늘날의 경제는 끊임없이 소비를 독촉한다. 나의 사회적 지위, 외모, 품격, 인간관계 모든 것이 소비에 의해 결정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씀씀이도 커진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해도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풍요로움’은 신기루와도 같다.

 이 책은 ‘산촌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산촌 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 자산을 활용해 경제를 살리고 공동체를 부활하는 경제 질서를 뜻하는 신조어다. 쉽게 말해,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자급자족하고, 산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로 난방과 취사를 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양식을 통해 저자는 지역의 경제가 자립하고 경제가 순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원시인이 되란 말이냐’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짓고 살란 말이냐’ 등 불만이 터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산촌 자본주의는 현대인의 생활을 모두 과거의 농촌 생활로 돌려놓자고 주장하진 않는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지금의 생활 양식을 조금만 바꾼다면 산촌 자본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말농장 등 부분적으로나마 자급자족이 가능한 환경을 확대할 것을 조언한다.

 산촌 자본주의에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건 발상의 전환이다. 우리가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는 기존의 경제질서를 의심해 보고, 대안을 꿈꾸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비현실적인 대안이 구체화되면 정말 언젠가는 현실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S BOX] 함께 사는 세상, 더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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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만이 이 시대의 구호일까. 각계 전문가들이 공존의 지혜가 담긴 책을 추천했다. ‘이 달의 책’과 함께 읽기에 적당하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 『우애의 경제학』(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그물코, 199쪽, 9000원)
“새로운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

●정갑수 (핵물리학자) : 『세상을 만드는 분자』(시어도어 그레이 지음, 꿈꾸는 과학 옮김, 다른, 240쪽, 3만원)
“이 책을 보면 세상이 온통 화학적으로 보인다. 아름답고 위대하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 『투게더』(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488쪽, 1만8000원)
“다양한 개성·인종·계급·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왜 손을 맞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세넷의 조언.”





http://news.joins.com/article/18547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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