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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 21:51

독서도 요령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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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기 고민상담소 유시민입니다. 오늘은 쓰기가 아니라 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독서법에 대해 질문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독서법이 있는가? 굳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하는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책이라도 참고 읽어야 하나? 그런 질문입니다. 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하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있었답니다. 하하. 
책을 읽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고, 우리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책을 읽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 느끼고 배우는 게 있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저도 제가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책을 읽는 이유
여러분은 몇 살 때부터 책을 읽으셨나요? 저는 일곱 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책 읽기를 권장하셨고, 누나들이 읽던 책이 방에 굴러다녔습니다. 저는 누나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 뭘 읽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7월생이라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조르는 제 손을 잡고 누나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교장실에 가서 저는 책을 읽고 구구단을 욀 수 있다는 것을 교장 선생님께 보여 드렸지만, 결국 퇴짜를 맞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낙심한 저를 위로하려고 아버지가 어린이신문과 월간 <어깨동무>에 구독 신청을 해 주셨습니다. <만화 홍길동>을 그 어린이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어깨동무>의 '세계 7대 불가사의' 기사에서 이집트 피라미드와 네스 호 괴물 이야기를 읽기도 했지요. 요즘 아이들이 그림동화나 학습 만화로 텍스트 읽기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책을 왜 읽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재미있어서. 궁금해서. 교양인이 되려고.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글을 잘 쓰려고. 시간을 죽이려고. 설문 조사를 해서 알아본 게 아닙니다. 제가 책 읽는 이유를 생각해 본 겁니다. 저는 지금도 어떤 책은 재미로 읽고, 어떤 책은 글을 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책은 단순히 무료함을 잊으려고 읽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럴 겁니다. 
독서는 내면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어떤 동기로 어떤 책을 읽든 다르지 않습니다. 책이 간접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책에 여러 가지를 담습니다. 정보, 사실, 논리, 이야기, 생각, 감정 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것을 배우고 깨닫고 느끼게 됩니다. 일종의 간접경험을 하는 셈입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경험의 폭을 넓히고 인식의 폭을 깊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자연과 우주를 더 잘 이해하게 합니다. 그래서 책이 사람을 키운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목적, 어떤 욕구 때문이든 많이 읽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단 한 쪽이라도 책을 읽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배우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니까요.
2. 글쓴이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이 들고,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흔히 품게 되는 몇 가지 의문을 살펴볼까요? 질문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저는 독서를 좋아합니다. 글짓기대회에서 금상도 타보았고 글 쓰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또래들보다 오히려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서가 글짓기 향상에 도움을 주지만, 현대사회에서 독서는 글짓기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느낌이 들어 아쉽습니다. 독서를 진정 즐거워서 하는 건지, 억지로 하는 건지, 오히려 그 시간에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창준 님)

추천도서를 말씀하시면서 어려운 책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으라 하셨는데요.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읽지 못한 책도 몇 권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도 끝까지 못 읽었습니다. 완전이해는 어렵더라도 어떤 내용이라는 것 정도도 괜찮다 하셔서 다시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독해능력을 기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새벽별 님)

조선 사도세자에 대한 일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더군요. 그렇다고 사료를 직접 읽을 실력은 안 됩니다. 최근 정병설 님의 <권력과 인간>을 읽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덕일 님과 입장이 다르네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푸른바다 님)

김창준 님, 독서는 글쓰기의 기초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삼았든 삼지 않았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봅니다. 많이 읽는 사람 중에 잘 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이라는 말이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에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많이 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모든 걸 다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으니까요. 재미든 의무감이든, 동기가 무엇이든 많이 읽을수록 글쓰기에 좋습니다. 
새벽별 님, 어렵게 느끼는 책은 굳이 참으면서 끝까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완독하는 데 실패한 책이 여럿 있습니다. 출판사 세계 문학 전집이라면 어디에나 들어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야 저 말고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다들 재미있다는데 저는 잘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카프카의 작품 가운데 유독 <성>만큼은 세 번 도전해서 세 번 다 실패했습니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궁합이 맞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이 책이 재미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저는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도 너무 어려워서 조금 읽다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을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추상적 사고를 저보다 훨씬 잘하는 분들이지요. 재미없고 어려운 책을 대하는 제 나름의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완전 재미없고 난해한 책은 읽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본다. 그래도 재미없고 어려우면 또 접어 둔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또다시 도전한다.

② 재미가 있지만 난해한 책은 난해한 대목을 건너뛰고 흥미로운 대목만 먼저 읽는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 다시 읽으면서 건너뛰는 부분을 줄이려고 노력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며, 설사 다 읽을 수 있다 해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사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나하고 잘 맞는 사람, 통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해야 합니다. 맞지 않는 사람과 싸우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치에서
내게 재미있는 책,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감동 받는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게
최선입니다
우리는 많은 책을 읽고 깊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간접경험을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취향이 예전과 달라지고 독해력이 성장하고 시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재미없고 난해한 책은 덮어 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도전하라는 것이지요. 지금은 재미없고 난해하기만 하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책은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지면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세월이 더 흐른 후 <호밀밭의 파수꾼> 완독에 다시 도전할 생각입니다.
푸른바다 님, 영조가 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과 해석이 있습니다. 이덕일 선생님과 정병설 선생님은 같은 사료를 각자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영조의 아들 살해 이유를 다르게 설명한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공식 국가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 개인의 회고록인 <한중록>이 비속살인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록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역사 연구자가 아닌 우리들은 어느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부엌에 가면 며느리가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가 옳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니 굳이 판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덕일 선생님과 정병설 선생님이 그 사건을 다르게 설명하는 이유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그럴듯해 보이는 쪽을 지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그런 정도가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연구자들은 논쟁하고, 독자는 감상하면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책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가와 비판은 그다음에 할 일입니다. 단순히 예의를 지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에게 감정이입해서 그 사람의 글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야 제대로 간접경험을 할 수 있고 더 많이 배우고 깨닫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어야만 평가와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속독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책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읽으면 됩니다. 속도와 분량보다는 책 속에 깊이 들어가서 깨닫고 느끼는 시간을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생각과 감정이 풍성해지고 삶이 넉넉해집니다. 그러려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요?
3. 글을 잘 쓰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논리 글쓰기는 텍스트를 발췌 요약하는 데서 시작해 보라고 이미 권고해 드린 바 있습니다.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 같은 소설과 교양서를 반복해서 읽는 것도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짧은 기간에 논리 글쓰기에 필요한 콘텐츠를 갖추는 데 적합한 교양서 목록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실어 두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책을 읽으면서 제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책이나 영화에서 본 내용, 어떤 화가의 그림이나 어느 가수의 노래가 연상되기도 하지요. 그럴 때는 밑줄을 긋고 책 여백에 연필로 메모합니다. 하필 연필로 쓰는 것은 나중에 지울지도 몰라서입니다. 빌려 온 책은 포스트잇을 붙여 메모합니다. 글쓴이의 주장에 결정적인 허점이 보일 때도 같은 방법으로 표시합니다. 컴퓨터 앞에서 책을 읽는 경우라면 곧바로 그 대목을 자판으로 옮겨 적은 다음, 내 생각을 덧붙여 파일로 저장합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그렇게 표시한 부분을 가볍게 훑어보면 반복 학습 효과가 생겨서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검색하면서 책을 읽을 때도 많습니다. 이것은 저의 오래된 습관입니다. 30년 전 일입니다. 미하일 숄로호프가 쓴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총 열 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소련 지도를 펴 놓고 주인공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면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돈 강이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살폈고요. 자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더 좋습니다. 돈 코사크 민족의 유래와 특성, 러시아인과의 관계, 코사크에 대한 차르 정부의 정책이 어떠했는지 수월하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설 주인공이 왜 볼셰비키 군대와 싸웠는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지요. 소설뿐만 아니라 교양서를 읽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콘텍스트를 파악해 가면서 읽으면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에 리베카 솔닛이 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다른 사람이 만든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를 인용하더군요. 페미니즘은 '여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급진 사상'이랍니다. 여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왜 '급진 사상'일까요?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레이첼 카슨을 예로 들었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생물학을 공부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DDT를 비롯한 살충제와 제초제 때문에 벌레가 사라졌고, 그래서 봄철 새소리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살충제가 '침묵의 봄'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는 살충제가 자연 생태를 파괴함으로써 결국 인간과 지구를 죽인다는 것을 논증했고 친환경 농법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나중에 DDT는 발암물질로 판명되어 생산과 유통이 금지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주류 언론 칼럼니스트들은 레이첼 카슨을 신경증에 걸린 젊은 여류 작가로 취급했습니다. 그가 과학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지요. 레이첼 카슨이 남자였다면 언론이 그 주장을 그렇게 함부로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리베카 솔닛은 주장합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주장이지요.
리베카 솔닛이 레이첼 카슨의 사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침묵의 봄>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면 인터넷에서 레이첼 카슨의 연보와 <침묵의 봄>에 대한 서평을 검색해 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침묵의 봄>을 완독한다면 그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것입니다. 이렇게 관련 정보를 검색해 가면서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이해하는 데도 좋고 읽을 만한 다른 책을 찾는 데도 유익합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2천 자 정도로 독후감이나 서평을 써 보십시오. 그만한 글쓰기 훈련도 달리 없습니다. 서평을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려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소통할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4. 또 하나,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앞에서 제가 책을 읽는 이유를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외롭고 힘들고 슬플 때
그런 부정적 감정의
무게를 견디려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벌써 6년이 지났네요. 그해 2009년 5월, 제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분이 갑자기, 서둘러,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던 저는 소설가 김형경 님의 <좋은 이별>이라는 책을 붙들고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 그 슬픔을 대면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가 무엇이며 그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을 때, <좋은 이별>이라는 책 제목이 마치 눈을 찌르는 것처럼 다가오더군요. 그 책은 제가 상실의 아픔을 앓았던 그해 여름의 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정말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불과 몇 십 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과는 견줄 수조차 없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몇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상실의 아픔과 슬픔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경험했던 감정입니다. 누군가 그 감정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아예 책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플 때, 슬플 때, 분할 때, 억울할 때,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책을 찾게 됩니다. 그런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 그것과 공존하는 방법, 그 무게를 견디는 방법을 책에서 찾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는 문제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무려 2천 5백 년 전에 살았던 중국 사람 굴원의 <어부사>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우리는 책에서 무엇을 얻을까요? 제 경험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배움을 위해 읽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배움보다 느낌입니다. 여러분도 '배우는 책 읽기'와 함께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5. 마무리하며
상담 2주 차 즈음에 정현희 님이 댓글로 지적해 주신 게 있습니다. 제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34쪽에서 '알아야 면장'이라는 속담을 잘못 사용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빠곰 님이 같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두 분 말씀이 맞습니다. '알아야 면장'은 <논어(論語)>에서 나온 말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공자는 아들 리(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이것을 읽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아 더 나아가지 못한다."[양화(陽貨) 10] 여기서 주남과 소남은 <시경(詩經)>의 편명입니다. 공자가 아들더러 <시경>을 공부하라고 당부한 것이지요. 
결국 '알아야 면장'에서 면장은 '면장(面長)'이 아니라 '면장(免墻)'입니다. '면장(免墻)'은 '담장에 가로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피한다(免面墻)'을 줄인 말이지요. 국어사전에서 '면장'을 찾으면 面長과 免墻이 둘 다 나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속담이라 제가 멋대로 해석했는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착각을 하면서 이 속담을 쓴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학자들은 '오분석(誤分析)'이라고 한답니다. 잘못 해석하고 활용하는데 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하다는 뜻입니다. 아는 선생님들께 여쭈워 보니 언어는 용례를 존중하는 게 맞고 문맥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쨌든 제가 '알아야 면장'이라는 말의 유래를 몰랐던 건 분명합니다.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가르침을 주신 정현희 님과 아빠곰 님, 고맙습니다. 책 본문도 적절하게 바로잡겠습니다. 
오늘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예고해 드린 대로 전자우편 주소를 하나 알려 드립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미 2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책을 기증받기 원하는 동네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께서는 usimin0330@hanmail.net으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주소와 전화번호, 담당자 성함 등 기본 정보만 보내 주시면 그 일을 맡은 분이 연락을 드릴 겁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 목록을 미리 작성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후원자 여러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좋아할 책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럼 다음 주를 기약하면서, 오늘은 이만 총총^^


2015년 6월 1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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